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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역] 후지하라 타츠시 : 팬데믹을 살아가기 위한 지침 - 역사연구의 접근
    공부 2020. 4. 3. 18:44

    원문 : https://www.iwanamishinsho80.com/post/pandemic

     

    藤原辰史:パンデミックを生きる指針——歴史研究のアプローチ

    1 起こりうる事態を冷徹に考える 2 国に希望を託せるか 3 家庭に希望を託せるか 4 スペイン風邪と新型コロナウィルス 5 スペイン風邪の教訓 6 クリオの審判 1 起こりうる事態を冷徹に考える 人間という頭でっかちな動物は、目の前の輪郭のはっきりした危機よりも、遠くの輪郭のぼやけた希望にすがりたくなる癖がある。だから、自分はきっとウィルスに感染しない、自分はそれによって死なない、職場や学校は閉鎖しない、あの国の致死率はこの国ではありえない、と多くの人たちが楽観しがちである。私もまた、その傾向を持つ人間の

    www.iwanamishinsho80.com

     

    *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팬데믹(pandemic)이 단순히 '범유행'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유행병의 시대를 지칭하는 의미로도 사용되는 것 같아 '팬데믹'으로 옮겼다.

    * 2020년 4월 3일 18시 수정본을 기준으로 함

     

    후지하라 타츠시 : 팬데믹을 살아가기 위한 지침 - 역사연구의 접근

     

    1. 일어날 있는 사태를 냉철하게 생각하기

      인간이라는 동물은, 눈앞에 있는 분명한 위기보다도 멀리 있는 희미한 희망에 매달리고 싶어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본인은 분명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을 것이고, 바이러스에 의해 죽지 않을 것이며, 직장이나 학교는 폐쇄하지 않을 것이고 나라의 치사율은 나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낙관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비슷한 경향을 가진 사람 하나다.

      심각한 위기를 접하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고의 한계에 부딪힌다. 따라서 낙관주의에 매달려 현실에서 도주하게 된다일본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적다. 일본은 의료가 발전한 나라고, 어린이나 젊은 사람은 (바이러스에) 걸리기 어렵다. 1, 2 간이 확대냐 제압이냐의 경계다. 2 후가 갈림길이다. 3 후가 분수령이다. 1년만 있으면 올림픽 개최는 괜찮다. 나는 100 4 안에 들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져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희망은 언제부터인가 근거 없는 확신으로 전락한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여름에 시작한 1 세계대전이 크리스마스에는 끝날 것이라고 약속했다. 대본영(: 大本營, 전쟁 설치된 일본의 최고 통수기관) 국민에게 반복적으로 2 세계대전은 일본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위정자의 낙관과 허세를 언론이 그대로 내보내면서 정부에 반대한 사람들마저도 이를 상당수 믿고 있었다는 것은 역사의 냉혹한 사실이다.

      페스트의 기승, 30 전쟁, 리스본의 대화재, 나폴레옹 전쟁,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 콜레라 페스트 결핵 등의 만연, 1 세계대전, 스페인 독감, 우크라이나 기근, 2 세계대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 도쿄전력 원전 사고. 세계사는 생명의 위기의 순간으로 넘쳐난다. 심대한 위기가 도래했을 때에도 현실의 흐름은 언제나 희망을 냉혹하게 밟아왔다. 특히 대본영의 발표에 따라 움직여온 일본에서는 위정자들의 방송에 따라 안이한 희망론이나 도덕론이나 정신론(철수가 아니라 진로 변경(전진, 転進)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같은 속임수 ) 사람을 취하게 , 판단력을 흐리게 했던 막소주(安酒)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역사적 상식이다. 정도의 희망이라면 안기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도 말할 있다.

      상상력과 언어라는 도구밖에 갖고 있지 않는 문과계 연구자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도 제조할 없고, 치료약도 개발할 없다. 그런 직종에 있는 인간이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작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역사연구자는 자신이 발견한 사료를 본인이나 출판사 혹은 국가에게 좋은 쪽으로 해석하거나 거대한 희망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심리적 경향에서 멀어질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 허심탄회하게 사료를 읽는 기술을 철저하게 익혀온 것이다. 이러한 훈련은 과거에 일어났던 유사한 현상을 참고로 해서, 인간이 매달리고 있는 희망을 냉철하게 분별하는 것을 가능하게 것이다. 과학만능주의나 도덕주의와도 무관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환경사라는 인간과 자연(특히 미생물) 관계를 역사적으로 탐구하는 분야에 발을 담고 있다. 이러한 작업으로 현재의 상황을 살아가는 방침을 찾거나, 적어도 단서 정도는 얻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2. 국가에 희망을 맡길 있을까

      먼저, 현실을 관찰하고자 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를 분단하고 있다. 일본의 내부도 그렇다. 애초부터 일본만 감염자가 적다는 사실은 검사량이 적다는 점에 근거하고 있는 부분도 있기에 기뻐해서는 안된다. 불운하게도 최근까지는 도쿄 올림픽을 7월에 실행하고 싶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일본 사회에 근거 없는 낙관주의를 가져오고 있었다. 그러나 연기가 결정되자 마자 수도권에서는 감염자 수가 급속히 늘고 있다. 세계에서는 고령자나 중병자 이외의 감염자나 사망자도 늘고 있다.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건강 뿐만 아니라 국가, 가족, 그리고 미래의 신뢰를 부수고 있다. 전부터 벌써 토대가  흔들리던 것이기도 했지만.

     

    첫째, 국가.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면 마지막 희망을 리더와 리더의鶴の一(주: 모든 사람을 따르게 하는 권력자의 한마디)” 매달리려고 한다. 자신의 사고를 포기하고, 지사나, 수상, 리더에 위임하고자 한다.

      분명히 만약 내가 속한 조직의 리더가, 특히 국가의 리더가 지금까지 구성원에게 정보를 감추지 않고 제시해 왔다고 한다면 데이터에 근거해 구성원 자신이 행동을 선택하는 일도 가능하다. 다른 의견에 대해 관대한 지도자라면 보다 창조적으로 해결책을 제안하는 것도 가능하다. 데이터를 변조하거나 부하에게 변조를 지시하지 않고, 후대에 남는 문서를 제대로 존중하고, 역사를 중시하는 조직이라면 죽지 않았어도 목숨을 구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잘못은 부하에게 떠넘기고 도망쳐오는 그런 리더가 없는 국가라면 바이러스라는 싸움의 최전선에 서있는 사람들, 예를 들어 간호사나 간병인이나 보육인, 접객업의 불안을 최대한 줄이는 것도 가능하다. 위기의 상황에서 임기응변으로 기자의 질문에 대해 대응하고, 소수 의견이라고 탄압하지 않는 리더를 우리가 뽑는다면, 납득하고 사람들은 행동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예지 연마하기 위해유사시에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 물건을 미국에게서 강요당하 것이 아니라, 연구교육예산을 세금으로 지출하기 쉽도록 하는 데에 사명감을 갖고 있던 정부였다면 팬데믹에 대해서 적어도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 과학적 정책을 제언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일본정부, 또는 이와 유사한 해외의 정부는 지금까지의 우리가 말해왔던 무수한 비판에 귀를 닫은  위의 요건들을 만족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왔다. 그런 정부에 희망을 품게 하는 일의 일어날 가능성은 ‘주간문춘’ 3 26일호에 게재된최후에는 하부의 꼬리를 자르는’ ‘그런 세상이다라는 자살 직전의 아카키 토시오(赤木俊夫)의 떨리는 손으로 문자로, 그리고 현재 국회에서 정부 중추의 놀라울만큼 게으른 발언으로 산산히 깨지고 있다. 정권이 다시 45.5% 지지율을 얻고 있다는 경이적인 사실 자체가 더욱 사태를 악화하고 있다. (공동통신사세론조사, 2020 3 28일).

      게다가 국회는 긴급사태선언 내고 기본적인 인권도 제한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내각에 내주었다. 위정자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넘어서 자신의 편의대로 이런 선언을 사용한 사례는 세계사에 넘치고 있다. 어느 정도의 미련을 몸에 익히면 정부 아래서 위기를 맞이한 사실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일 있는 것일까.

     

    3. 가정에 희망을 맡길 있을까

    두번째. 가정

      국가가 의지할만하지 않다면 가정에는 생사를 와우하는 짐이 덮쳐온다. 가족 정도로 가깝고 의지하고 안심할 있는 존재는 없다. ‘농후접촉 피할 없는 운명 공동체라고도 있다. 그러나 재택 작업이 어려운 부모는 초등학생 아이를 집에 두고 가야만 한. 불안과 죄책감과 싸울 수밖에 없다. 불황에 따른 해고도 늘고 있다. 멀리서 늙은 부모가 도와달라고 해도 감염 위험에 노출되면서까지 장기간 여행하는 것은 부담된다. 결국 경제 기반도 육아 환경도 개선되지 않는다. 가정이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다.

      원래부터 아이에게 가정은 안전한 존재일까. 마땅히 그래야 하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정말 그런지에 대한 것이다. 일본은 70 한명의 아이가 빈곤한 상태에 있는 나라다. 경제 상황의 차이를 여기까지 넓혀버린 정책은 이런 위기의 시대에 돌아온다. [급식의 역사](이와나미 신서, 2019)에서 나는 고도 경제 성장기조차 하루의 중요한 영양을 급식으로 연명해왔던 아이들이 다수 있었다고 쓴 적 있다. 바로 현재는 아이들의 최후의 생명선까지 끊겨있는 상황이라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하루 끼의 최소한의 밥을 먹을 있는 가정이더라도 위험은 아직 남아있다. ‘쿠리에 재팬’의 "3 17일의 외출금지령 이후 가정 내 폭력이 증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파리 경찰 관할 지역에서는 일주일 32%, 헌병 관할 지역에서는 36% 정도 가정 폭력이 증가했다고 한다"는 내용에서 알 수 있다. 여성을 향한 가정 폭력이 이미 사회 문제가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서도 평소에는 장시간 함께 있지 않는 가족들이 같은 지붕 아래 있다는 것으로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가 가정이 적지 않을 것이다. 평소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에게 가정은 도망치기 힘든 감옥일 것이다. 아이만이 아니라 배우자, 특히 남편의 가정 폭력을 당해온 아내에게는 외출이 어려운 현상이 문자 그대로 '감옥'이라고 수밖에 없다. 이후 감염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족 구성에서 빠지는 것도 충분히 생각해볼 있다.

      가족이 기능하지 못하면 지역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원래부터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지원해주는 장소가 신형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기능이 저하되거나 불가한 상황이 되고 있다. 지역의 활동 장소인 PTA(학부모회) 자치회도 NPO(비영리단체) 비말 감염이 우려되는 가운데 활발한 원조의 손을 내밀기 어렵다. 어린이 식당도 학교 급식도 거의 폐쇄되어 아이들의 배와 마음의 외로움을 누구도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지금 시점에 최근 빈발하고 있는 수해나 지진과 같은 대재해가 발생한다고 한다면, 지역의 피난소는 틀림 없이 감염의 온상이 되고 것이다. 따라서 시점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재해시의 피난 대응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작성해야 것이다.

     

    4. 스페인 독감과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활동이 진정이 아니라 확산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희망적인 관측에서 의지가 될만한 지침을 선별하기 위해 참고해야 역사적 사건은 사스(SARS) 에볼라 출혈열보다스페인 독감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독감은   전의 팬데믹이라고 있다. 미국을 지원지로 하는 독감의 재앙은, 전쟁 정보 통제로 인해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에서 인플루엔자에 대한 정보가 퍼지기 시작해 스페인 사람에게는 누명일 수도 있는 역사적 명칭이 되었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햇수로 3년에 걸쳐서 차례의 유행이 이루어졌고, 세계적으로 적게는 4800 , 많이는 1 명의 목숨을 빼앗고 (야마모토 타로, [감염증과 문명 - 공생에의 길], 이와나미 신서 2011) 세계 사람들을 공포의 수렁에 빠뜨렸다. 이런 규모에 비해 교과서에서도 역사서에서도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세계사의 장면이다. 나는 1 세계대전 시기 독일의 기아 연구를 진행하던 ([순무의 겨울 - 1 세계대전 독일의 기아와 민중], 인문서원, 2011) 많은 민간인이 고통 받았던 스페인 독감에 대해 조사한 있었고 현재의 팬데믹 상황과 비슷한 점이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 다 바이러스가 원인이고, 국가를 가리지 않으며, 지구 규모로 발생했고, 거대한 배에서 사람들이 집단 감염되어 죽었고, 초동 대책에 실패했고, 루머가 난무하며, 유명 인사가 다수 사망하는 발생 당시의 상황이 비슷하다.

      그러나 당시에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분리하는 기술이 충분히 확립되지 않아서 의료 기술적으로는 현재가 유리하다. 지구 인구가 17 정도였던 당시와 75억까지 늘어난 현재를 비교하면 과거가 유리하다. 신문 이외의 SNS에서도 많은 미디어가 필요 혹은 불필요하게 정보를 대량으로 발신하고 있는 것도 현재의 특징인데, 어느 쪽이 나은지는 모르겠다. 전에는 WHO 존재하지 않았기에 원래대로면 현재 상황이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좀처럼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운 것은 보도의 거리 때문일 것이다.

      백 전의 일본은 마침 쌀소동(: 1918 일본에서 쌀값 폭등으로 일어난 소동) 시베리아 전쟁(시베리아 출병) 시대였다. 당시 아시아나 유럽이나 북미대륙에서 지금까지도 불가능한 정도의 사람들의 이동이 있었다. 1 세계대전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1918 봄부터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고 있던 미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수송선을 타고 유럽에 도착했고, 환기 상황이 안좋고 나쁘고 인구 밀도가 높은 선내에서 점점 감염이 확산되면서 건강했던 젊은이들이 점차 죽어가기 시작했다. 유럽에는 아시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프랑스로, 인도나 미얀마에서 이탈리아로, 중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유럽으로 이주해왔다(동남아시아의 1 세계대전에 대해서는 하야세 신조, [만다라국가에서부터 국민국가로 - 동남아시아 역사에서의 제1차 세계대전 (マンダラ国家から国民国家へ——東南アジア史のなかの第一次世界大)] 인문서원, 2012년.) 결국 아시아로도 감염이 확대되어 일본에서도 수백만 명이 죽었다.

      인플루엔자가 이렇게까지 퍼져나가서 많은 병사들이 죽었던 이유로는 전쟁 중의 위생 상태와 영양 상태 때문으로 여겨졌다. 환경사가인 알프레드 W. 크로스비에 따르면 병사는 컨디션 불량을 느껴도 위생적으로 좋지 않은 환경에서 무리해서 작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서 악화되기 쉽고, 감염되기도 쉬웠다고 있다. 전장의 후방은 식량 부족으로 시달리고 있었기에 역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쉬웠다. 게다가 당시 병사들을 괴롭히고 있었던 하나가 충치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Ruchel Duffett, The Stomach for Fighting: Food and the Soldiers of the Great Wa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2012, p. 21.) 바이러스의 주요 생존 장소인 구강의 위생 상태가 상당히 나빴다고 .

      그렇다고 해서 지금, 세계 규모로 펼쳐지고 있는 전쟁이 없었다고  없다. 지난 십 년 사람들의 이동은 당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가장 최대의 현상은 작금의 '오버 투어리즘'이다. 때의 군인은 지금의 관광객이. 배가 아니라 비행기로 움직이는 관광객들의 움직임은 빈도와 양이 이전과 현격하게 차이난다. 그것이 이번의 특징이라고 있다.

     

    5. 스페인 독감의 교훈

      스페인 독감의 과거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준다. 크로스비의 [사상 최대의 인플루엔자 - 잊혀졌던 팬데믹(史上最悪のインフルエンザ——忘れられたパンデミック] 참고해가면서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감염증의 유행은 회로는 끝나지 않을 있다. 스페인 독감은 3회의 유행이 있었다. 처음에는 4개월에 걸쳐 세계를 일주했고, 두번째는 처음보다 치사율이 높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에도 감염자의 수가 적어졌다고 해도 절대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변이를 한다. 약한 독성의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도태되는 압력이 가해지면 독성을 강화한 바이러스가 번식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나 언론에서 첫번째 유행에서 팬데믹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나는 정말  없다. 조금이라도 현대사를 공부한다면 있듯, 내년의 도쿄 올림픽이 개최된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둘째, 상태가 안좋다고 느낀 무리를 하는 것이 스페인 독감의 확산을 넓혀 병세를 악화시켰다. 무엇보다 군대 조직에 종사하는 병사들의 위생상태나 이외의 수많은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있다. 과로사나 자살까지도 만들어내는 일본의 조직의 체질 자체가 점에서 마이너스가 수밖에 없다.

      셋째, 의료 종사자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서는 안된다. 스페인 독감을 살아 넘겼던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의사나 간호사의 헌신적인 간병이 도움되었다고 술회한다. 앞의 환자의 생명이 걸려 있는 경우 이러한 사람들은 아마 자신이 무리하더라도 도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있다.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일본의 간호사들은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몸을 희생해가며 최전선에서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세계 현대사는 번도 간호사와 같은 의료 종사자들에게 빚을 갚은 적이 없다.

      넷째, 정부가 전쟁 수행을 위해 세계적인 정보 제공을 제한하고 언론도 그에 따랐던 . 이는 스페인 독감의 폭발적인 유행을 촉진했던 원인이다. 정보의 공개는 빠른 분석을 가능하게 하고, 사전에 감염 요인을 처리할 있게 한다.

      다섯째, 스페인 독감은 1 세계대전의 사망자보다 많은 사망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후대 역사 서술은 물론 사람들의 기억에도 사라졌던 . 그러므로 역사적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진 이후의 세계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대로 데이터를 남겨서 역사적으로 검증할 있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스페인 독감이 그랬던 것처럼 위험 탈출 위기를 넘겼던 것을 공훈하고 권력화 하려는 무리가 늘어날 것이다. 불쾌한 승리 이벤트가 무더기로 뭉쳐나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바이러스에 대한승리'라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농경과 목축으로 정주를 시작해 도시를 건설한 이래 바이러스와 공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제임스 C. 스콧의 [(한국어) 농경의 배신 (反穀物の人類史——国家誕生のディープヒストリー]).  만약 누군가에게 표창한다면 그것은 의료 종사자나 케어 워커(care worker) 헌신적인 움직임에게 표창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정부도 민중도 종종 감정에 의해 이성이 흐려지는 일이 있다. 백 년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는데, ‘합중국 공중 위생국이 가을의 2 범유행 중간 다른 해야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엘사에 아스피린정의 검사를 했던 이다. 이는 ‘1918 당시의 반독일 감정이 광신적일 정도로 치솟아이상한 소문, 독일의 바이엘사가 제조한 아스피린에 인플루엔자 병원균이 섞여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크로스비, 앞의 , 259)

      현재에도 의심이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차별 의식을 일깨우고 있다. 지금까지의 세계가 차별과 철저히 싸워왔더라면 요즘 같은 시기 생겨나는코로나 바이러스의 뿌리인 중국인은 거절이라는 발언이나 구미에서의 아시아인 차별을 줄일 있었을 것이다. 또는 정치인들이 차별의식에서부터 자유로운 인간들이었다면 위기의 시대에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품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품성의 상실은 팬데믹의 진정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방해한다.

      일곱째. 미국에서는 청소 업자가 인플루엔자에 걸려 쓰레기 차량이 움직이지 못하고 마을에 쓰레기가 넘쳐났다. 이는 도시의 위생을 악화시키고 의료 붕괴도 가져온다. 의료 붕괴도 피하고 싶지만, 청소의 붕괴도 위험하다. 

      여덟째. 위정자나 관료들 중에서도 감염자가 늘어 행정 절차가 밀릴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이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었다. 그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와의 4개국 대담 중 39.4도의 발열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고 그 동안 회의의 흐름이 달라져 베르사유 조약이 독일에 징벌적인 형태로 결정되고 말았다.

     

    6. 클리오(Clio, 역사의 여신)의 심판

      다시 말하자면,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진정된다고 해서 위기가 떠났다고 수는 없다. 사실 정말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를 무서워하는 인간이다. 독일의 총리 앙겔라 메르켈은 3 18일의 연설에서 일본의 수상과는 달리, 예외적으로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것의 아픔을 강조했다. 동독 출신의 그녀에게 이동과 여행의 자유는 노력해서 겨우 얻어낸 것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예외적인 것이 계속되는 점이 나에게 있어서는 의문이다. 이번의 팬데믹은 사람들의 인식을 크게 바꾸고 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대한 위험의 공포가 높아지면서 데이터 보존과 처리를 기반으로 개별 생체 관리형 권위국가나 자국중심주의적 내셔널리즘 국가가 모델이 될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EU 이념이 부활할 기회가 지도 모른다는 희망적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했지만 나는 앞에서 이야기한 이유로 가치가 폭락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다. (Yuval Noah Harari, In the Battle Against Coronavirus, Humanity Lacks Leadership, in: Time on 15 March 2020.) 또한 하라리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응에 대해 각국의 차단이 아닌 협력을 호소하고 있으며, 전면적으로 찬성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국 중심주의에 빠지는 국가가 국제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 이렇게 세계의 질서와 민주주의 국가는 본격적으로 쇠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팬데믹이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던 것처럼.

      또한 하라리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지만,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살균하는 소독 서비스가 유행하고, 공포를 진정시키기 위한 화장품의 시장 가치가 창출되면서 사람들이 그렇지 않아도 만연하던 결벽주의에 영향을 받고, 인간에게 유용한 세균이나 바이러스까지 절멸시켜 버리는 위기와 이에 따른 체내 미생물상의 약체화, 면역 계통에의 악영향에 노출될 지도 모른다. 1 세계대전 이후 독가스 생산이 민간에서도 가능해져 살충제 생산이 늘었던 것과 ( 하나가 유태인 학살에 사용되었던 치클론 B) 이를 활용해 대중교통기관이나 공공시설을 소독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인플루엔자가 맹위를 떨치고 있었던 것과 관계있을 것이다 (졸저 [전쟁과 농업(戦争と農業)], 2017년).

      소독 문화의 폐해에 대해서는 마틴 J. 프레이저의 [잃어가는 우리들 안의 세균(失われてゆく、我々の内なる細菌)] 참고가 것이다. 특정 바이러스를 체내에 오랜 기간 공생시키며 다른 세균으로부터 보호하는 상황이 가능성을 점점 더 잃어갈 지도 모른다. 결벽주의가 인종주의와 결합하면 나치의 사례처럼 심각한 문제가 수도 있다.(H. P. 브로일 [나치 독일 청결한 제국])

      이렇듯 나쁜 일은 얼마든지 상상할 있다. 하지만 세계사의 주민들은 한번도 위기의 반성에서부터 위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미래의 지침을 만들어낸 적이 없다. 세계사에서 흘려온 피가 배어든 바통을 잡고 있는 우리들은 이번이야 말로 이후에 있는 지침을 만들기 위한 탐구를 있지 않을까.

      우선 첫째로, 양치질, 손씻기, 가글, 세수, 환기, 목욕, 식사, 청소, 수면이라는 일상의 습관을 박탈하지 않는 . 당연하다는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르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전쟁과 전쟁을 위한 , 철도로의 이동이 이러한 어려운 습관을 어렵게 것이었다. 인간을 비위생적인 장소에서 머무르게 하고 감금했던 것이 이런 기본적인 행위를 어렵게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일이 바쁘더라도 일하는 중에 이러한 기본적인 예방(예를 들어 점심시간에 양치를 하거나 공동 쓰레기통이나 화장실을 깨끗이 사용하는 ) 부하가 실천하는 것에 대해 상사가 말리지 않고 스스로 기꺼이 도와주는 . 먹고 웃고 자는, 면역력을 높이는 중요한 행위가 지금까지 일보다 중시되지 않았던 것을 반성해보는 것도 좋다.

      둘째로, 조직이나 가정 내에서의 폭력이나 불합리한 명령에 대해 조직이나 가정에서 벗어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절대 자제하지 않는 . 무엇보다도 이를 자제하려 들지 않는 . 지방자치단체는 시급한 준비를 했다. 총력전이니 <성내 평화Burgfrieden>(1 세계대전때 독일에서 제기했던 슬로건) 가자는 것이 20세기의 역사에서는 평범한 것이었지만 이의제기를 억제하는 것이 신형 바이러스의 피해를 확대하는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인 마크롱은 3 16 TV 연설에서우리는 전쟁 상태에 있다 반복해서 말하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도전시하의 대통령'이라고 스스로를 서슴지 않게 부르고 있지만 이는 양날의 칼과 같다. 긴급성을 높이는 뿐만 아니라 다른 의견을 탄압하는 데에도 매우 효과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전쟁이든, 올림픽이든, 엑스포든 재해나 감염으로 단순히 중지되거나 연기할 없는 이벤트에 국가가 영혼을 쓰는 것은 세금은 물론 시간의 낭비다. 어떤 이벤트도 기본적인 정신으로 되돌아가서 간단한 운영을 해야한다. 특히 일본처럼 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열도는 언제 취소되더라도 대응 가능한 운영이 요구된다.

      넷째로, 경제 세계화의 그늘에서 전쟁과 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 비말 감염의 위기가 어느 정도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 위기란, 생활이 언제나 위기인 사람에게는 일상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된다. 언제 떨어질 모르는 전투기에 매일 노출되는 기지 주변의 사람들이나, 폭음으로 신경 손상을 입은 리스크, 사고를 입을 리스크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하는 리스크보다 낮을 것인가. 원전 사고로 방사성 물질에 노출되어 아직까지 피난중인 사람들에게 질병에 걸릴 리스크는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릴 위험보다 낮을 것인가. 상사의 괴롭힘을 받으며 일하는 사람에게 과로사나 자살이나 우울증의 위험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을 가능성보다 높을 것인가. 노숙자가 질병을 앓고 있는 가능성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보다 높을 것인가. 파견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미혼모에게 몸을 무너뜨리고 아이에게 부담을 주는 무서움은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무서움보다 작을 것인가. 학교에 친숙해질 없는 아이들이 학교에 의해 상처받을 위험은 아이들에게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병할 위험보다 적을 것인가. 권력을 잡는 사람들은 매일 위기에 놓여온 사람들의 일을 잊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렇게 취약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마저 심대하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은 현대사를 되돌아보더라도 충분히있는 일이다.

      다섯째, 위기의 시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억제하거나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의제기를 멈추지 않는 . 대만의 보건부 장관처럼 체력적으로도 지식적으로도 몇시간 동안 어떤 질의가 들어와도 성실하게 대답하는 인간만이 정치라는 것을 있다. , 인터넷 상의 신문기사는 개인의 생명에 관련된 중요한 기사여도 유료인 경우가 많다. 정보의 제한이 사람을 생명을 구하지 못하게 지도 모른다. 적어도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기사라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이다.

      일본은 각국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여신 클리오에 의해 시험되고 있다. 과연 일본은 팬데믹 후에도 살아남을만한 국가인가? 클리오가 심판을 내릴 기준은 무엇일까. 위기의 시대에 태어난 학술이나 예술의 도약도 하나의 기준이 되겠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망자 수도 최종적인 판단 기준이 되지 못한다. 시험되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인간가치를 깎고 버리는 것에 대항하는가에 달려 있다. 감정에 휘둘리며 마주하는 좌절(frustration)마녀사냥 이나약한 에게의 공격으로 만드는 야만성을 어떻게 극복하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우한 봉쇄의 일상을 일기로 쓰고 공개한 작가들은 나라가 문명 국가인인지의 여부() 기준은, 고층 빌딩이 많다던지, 자동차가 질주한다던지, 무기. 군대의 강함이나 과학기술의 발전, 예술의 다채로움, 화려한 이벤트, 불꽃놀이의 휘황찬란함, 돈의 힘으로 세계를 호령하고 세계의 물건들을 사모으는 것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기준은 하나다. 약자를 대하는 태도라고 갈파(喝破)했다.

      위기의 시대인만큼 위기의 여파가 오는 사람들을 위해 어느 정도의 대책을 세울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위기의 시대는 지금까지 숨겨졌던 사람들의 천박함과 일상의 위기를 표면화한다. 위기 이전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에 필적하는 위협에 싫을 정도로 노출되어 사람들을 위해 어느 정도의 힘을 쏟을 것인가. 그리고 팬데믹 후에도 이를 계속할 각오가 있는가. 생각지도 않고 돌을 던지고 있는 사람과 함께 돌을 던지게 되는 천박함은 언제까지 억제할 있을까. 이것이 클리오의 판단 기준일 것이다. ‘꼬리 자르고 책임을 강요하는 것으로 바이러스를제압했다고 교만하는 국가는 팬데믹 이후의 세계에서 부끄러움도 없이 무너져내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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